항공의 역사
PART6
<라이트 형제>
최초의 동력비행 성공
많은 비행실험과 시행 착오를 거듭했으나 하늘을 새처럼 자유롭게 날지 못했던 인류는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의 공기보가 무거운 비행기계인 동력 비행기의 발명으로 드디어 하늘을 정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랭글리가 동력비행에 실패한 9일 뒤인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는 항공사상 최초의 동력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오전 10시 35분에 찬바람이 부는 키티호크의 킬데빌(Kill Devil) 모래 언덕에서 오빌 라이트가 조종한 플라이어 1호(Flyer I)는 이륙하여 3m의 고도로 12초 동안에 36m를 비행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태운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계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륙하여 동일한 속도로 평행 비행을 한 다음에 이륙한 지점과 동일한 고도의 지점에 착륙한 역사상 최초의 비행이었습니다.
이 비행장면을 보고 있던 5명의 경비병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역사적인 순간을 촬영했습니다. 기체가 한 쪽으로 기우는 것을 염려한 윌버가 오른편 날개 쪽에서 기체와 함께 달리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가 동력비행에 성공한 사실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들 형제는 교대로 모두 4번의 실험비행을 했는데 오빌의 첫 번째 비행에 이어 두 번째는 형인 윌버가 조종하여 152.5m, 세 번째는 다시 오빌이 조종하여 60m, 마지막에 윌버가 비행하여 59초 동안에 260m를 비행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최초의 동력비행에 비행에 성공한 역사적인 대사건은 언론에 의해 묵살되었습니다. 미국이 최초로 동력 비행기로 하늘을 정복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미국 정부나 미국인들이 인식하는 대는 수년이 걸렸습니다. 1904년에 라이트 형제는 플라이 2호를 만들었고 1905년에 38분 동안에 339m를 비행한 개량형인 플라이어 3호를 만들어 미 국방성에 구매 요청을 했으나 이를 기각해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 뒤 형 윌버는 프랑스로 건너가 1908년에 35마력의 엔진을 장착한 복엽기 라이트A형으로 유럽의 관중이 보는 가운데 이륙하여 경기장을 두 바퀴 비행한 후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1909년에는 비행시간 2시간 20분에 124.7km의 장거리 비행 기록과 시속 54.8m의 속도기록, 고도 300m의 고도기록을 세웠고 이어서 1910년에는 엔진을 40마력으로 늘리고 2960m의 고도 기록을 세웠습니다.
성공비결
라이트 형제의 성공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공기 역학 원리의 이용, 우수한 엔진의 설계, 효율이 매우 높은 프로펠러의 고안, 양력을 높일 수 있는 날개, 그리고 조종장치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했던 것은 키티호크에서 글라이더 실험비행을 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글라이더의 비행실험에 필요한 시속 8km의 바람이 항상 부는 장소를 워싱턴에 있는 미국 기상청에 문의한 결과, 매초 7-11m의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키티호크를 추천 받아 그곳을 실험비행 장소로 택한 것이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항공사에서 비행의 성지로 알려진 키티호크는 미국 동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동북쪽에 위치한 작은 어촌으로 폭 1.5km 길이 8km의 모래 섬입니다. 이 섬에 높이 25m의 킬 데빌 언덕이 우뚝 서 있어 비행실험하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글라이더로 비행실험을 했던 킬데빌 언덕 위에는 라이트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최초의 동력비행을 했던 모래사장에는 국립 라이트 기념 공원으로 지정하여 라이트 형제의 공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플라이어 1호기는 현재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항공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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