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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항공지식(일반)

Boeing(보잉)

by SPECIAL 호기심심풀이 2020.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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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eing(보잉)


보잉은 세계 최대의 항공 우주 회사이자 상용 제트 여객기, 방위, 우주 및 보안 시스템, 애프터 마켓 지원 서비스 제공 업체의 선두 제조업체이다. 미국 최대의 제조 수출국인 이 회사는 150개 이상의 국가에서 항공사와 미국 및 연합 정부 고객을 지원한다. 보잉 제품 및 맞춤형 서비스에는 상업용 및 군용 항공기, 위성, 무기, 전자 및 방위 시스템, 발사 시스템, 고급 정보 및 통신 시스템, 성능 기반 물류 및 교육이 포함된다.


보잉은 항공 우주 리더십과 혁신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회사는 새로운 고객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품 라인과 서비스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광범위한 기능에는 상용 비행기 제품군의 새롭고 보다 효율적인 멤버 생성, 군사 플랫폼 및 방위 시스템의 설계, 구축 및 통합, 고급기술 솔루션 생성, 고객을 위한 혁식적인 금융 및 서비스 옵션을 마련한다.


시카고에 지사를 둔 Boeing은 미국 전역과 65개국 이상에서 153,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보잉은 3개의 사업부로 구성되어있다. 상업용 비행기, 방위/우주 및 보안, 보잉 글로벌 서비스




상업용 비행기


보잉은 수십 년 동안 최고의 상용 제트기 제조업체였습니다. 현재 이 회사는 737, 747, 767, 777 및 787 항공기 제품군과 Boeing Business Jet 제품군을 제조한다. 신제품 개발에는 Boeing 787-10 Dreamliner, 737 MAX 및 777X가 포함된다. 전 세계적으로 10,000여 대의 보잉이 건설한 상업용 여객기가 운행되고 있으며, 전 세계 항공기의 거의 절반에 해당된다. 이 회사는 또한 화물선 제품을 제공하며, 전세계화물의 약 90%가 보잉 비행기에 실린다.




국방, 우주 및 보안


국방, 우주 및 보안은 상업 파생물, 군용 항공기, 위성, 인간 우주 탐사 및 자율 시스템의 설계, 생산, 수정, 서비스 및 지원을 위한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다각화 된 글로벌 조직이다.

Boeing 767 상용 비행기를 기반으로하는 KC-46 공중 급유 항공기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고객이 다양한 요구사항을 해결하도록 지원한다.

AH-64 아파치 헬리콥터, 702 위성, CST-100 스타라이너 우주선 그리고 자율적 에코 보이저 등

항공우주 혁신을 통해 세계를 연결 , 보호, 탐색 및 고무하려는 Boeing 비전에 힘 입어 정보 기술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향상된 기능 및 플랫폼의 연구 및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보잉 글로벌 서비스


Boeing은 상용 및 방위 플랫폼의 주요 제조업체로서 전 세계의 혼합 차량에 대해 탁월한 애프터마켓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보잉 글로벌 서비스는 장비의 최초 제조업체와 상관없이 상업, 방위 및 우주 고객을 위해 혁신적이고 포괄적이며 비용 경쟁력이 있는 서비스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Boeing Global Services의 탁월한 24시간 지원은 정부 및 상용 서비스 제품에 결친 엔지니어링, 디지털 분석, 공급망 및 교육 지원을 통해 고객의 상용 항공기 운영 효율성을 높인다.




역사


보잉은 1916년,  시애틀에서 창립주인 윌리엄 E. 보잉(William Edward Boeing, 1881~1956)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 때의 이름은 '태평양 항공기 제작사'였다. 1917년에 비로소 '보잉 항공기 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보잉은 초창기에 주로 수상비행기를 만들었다. 당시 항공기는 주로 나무로 된 뼈대에 방수천을 덧대서 기체를 만들었는데, 보잉은 예일대에서 목재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었고, 또 한동안 목재회사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어서 이런 항공기용 나무 뼈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보잉의 창립에도 일화가 있다. 윌리엄 보잉은 당시 비행기의 발명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1910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merican Air Meet이라는 곳에서 비행기를 타보려 했으나 자리가 하나뿐인 비행기라 타지 못하고 5년 뒤인 1915년에 유니언 강에 조종사 테라 마로니에게 날개에 붙어서라도 탈테니 태워달라고 사정을 하면서 비행기를 탄게 원인. 그리고 비행기를 타 본 뒤에 한 말이 "자리도 부족한데 태워주시느라 수고많았소. 이제부턴 제가 조립해서 타겠소이다"라고 하고서는 그 뒤에 시애틀로 돌아와 보잉을 차렸다고 한다. 2016년에 무려 보잉 창립 10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였다. 또한, 미국의 거대한 항공기 제작사 중 유일하게 파산하지 않고 수많은 회사들을 인수하였다. 대표적인 인수한 항공기 제작사로는 맥도넬 더글라스, 노스 아메리칸 록웰 등이 있다.


보잉은 회사를 창립하고 첫 엔지니어인 웡 트수를 영입, B&W로 불리는 보잉 최초의 항공기를 제작하였다. 초창기의 보잉은 제작한 항공기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업에 진출하였고, 시애틀-밴쿠버간의 에어 메일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세계 최초의 국제 항공화물 운송을 진행하게 되었따. 1929년에는 유나이티드 에어크래프트&트랜스포트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유나이티드 항공으로 여객 사업, 엔진 사업 등을 진행하여 입지를 넓혀갔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항공기 제작사의 항공사 소유 금지법이 개정됨에 따라 유나이티드 항공과 프랫&휘트니를 매각하게 되었고, 창립자인 윌리엄 보잉 역시 은퇴한다. 따라서 보잉은 다시 보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항공기 제작을 진행하게 된다.


세계대전은 보잉을 가장 강력한 군용기 제작사로 거듭나게 해주었다. 다양한 명작 군용기를 판매하며 군용기 사업에 대한 의존도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게 되었따. 이때 주로 생산된 보잉의 군용기로는 전설의 폭격기로 불리는 B-17, B-29, B-47 등이 있다. 하지만, 군용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머지 상업용 여객기에 대해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보잉은 247이라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여객기를 개발하였지만, 더글라스의 DC-3에 밀려 매우 저조한 판매량을 보여주었고 그 이외에도 247, 307, 보잉 314, 377 등의 여러가지 여객기를 개발하였지만 경쟁사인 더글라스가 완전히 민항기 시장을 위해 개발한 것과 다르게 대부분이 군용기를 민항기로 판매하기 위해 수정한 것이고 성능도 좋지 못했기 때문에 여객기 제조사로써의 보잉은 인지도가 높지 못했다.


하지만, 보잉을 여객기 제조업의 자타공인 최고로 만든 계기가 있었다. 바로, 세계 최고의 명작 제트 여객기이자 모든 제트 여객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707의 개발이다. 707의 개발은 보잉의 사장이 민항기 개발을 놓고 고민하던 중, 자사의 폭격기인 B-47을 탑승해보게 되었고 제트 항공기의 편안함과 정숙성에 감명받은 것이 큰 원인이었다. 경쟁사인 더글라스와는 달리 제트 여객기가 미래의 주 교통 수단이 될 것이라 예측하여 중장거리를 운항할 수 있는 당시로써는 대형 여객기였던 707을 내놓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707>


707의 초기 판매량은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바로, 보잉은 궁용기 제작사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했고, 보잉의 여객기는 좋은 성능을 보여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잉707이 명작 여객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 많은 항공사들이 707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더글라스가 DC-8을 재빨리 제트 여객기로 전환하여 개발하게 만들었다. 보잉의 707은 DC-8보다 높은 성능과 승객만족도를 보여주며 더글라스를 누르게 되었고, 이때부터 보잉은 세계최고의 여객기 제작사로 거듭나게 된다.


707의 대성공 후 보잉은 중거리 여객기를 제작해 달라는 항공사들의 요청에 따라 바다 위에서도 운항할 수 있도록 3발기로 제작한 보잉 727을 개발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더글라스에서 개발중이던 차세대 소형 제트 여객기인 DC-9와 경쟁하기 위해 보잉에서 가장 성공적인 항공기가 된 737을 개발하게 된다.


<737 Classic>


1970~1980년대에는 미국 공군의 차세대 수송기 사업에서 수주를 따내기 위해 록히드의 C-5와 경쟁하는 화물기를 제작하였으나 C-5에게 패배하였고, 망연자실한 보잉은 이 기체를 폐기하려고 했지만 팬 아메리칸 항공의 요청에 따라 여객기로 개발하게 되고 이는 보잉 747로 명명되었다.



1990년대에는 에어버스의 성공과 A320, MD-80이 매우 많은 수주를 따내게 되면서 보잉 737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고, 747의 판매량 역시 줄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보잉은 747의 개량형인 747-400을 출시하게 되었고 이 모델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록하드와의 컨소시업으로 F-22라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 개발을 맡게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게 된다. 또한, 맥도넬 더글라스가 최초의 중대형 항공기인 MD-11을 개발하자 보잉은 이에 맞서 777이라는 항공기를 탄생시켰고 이 항공기는 맥도넬 더글라스와 에어버스의 항공기를 압도하면서 보잉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에 보잉에게 일어난 가장 큰 일은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이다. 맥도넬 더글라스는 DC-10의 연이은 심각한 추락사고, MD-11의 성능 부족으로 인한 판매 부진과 주문 취소, MD-80의 주문량 감소와 MD-90의 실패, 그리고 맥도넬 더글라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힌 미국 공군의 공격기 사업 취소로 인하여 회사 자체가 휘청거리던 상황이었다. 보잉은 멕도넬 더글라스의 군용기를 상당히 탐내었고, 맥도넬 더글라스를 인수하기로 결정한다.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맥도넬 더글라스는 보잉의 인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1997년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이 성공적으로 성사되면서 엄청난 규모의 초거대 방위산업체로 거듭났따. 이 합병에 대해서 유럽에서는 상당히 말이 많았는데, 에어버스의 미래 항공기 판매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잉은 맥도넬 더글라스와의 합병으로 수많은 생산 라인들을 확보하였다. 먼저, 맥도넬 더글라스 상업용 항공기를 제작하던 캘리포니아 롱비치 공장을 소유하면서 MD-11, MD-80, MD-90, MD-95의 생산 라인을 보유하게 되었고, 보잉은 경쟁력이 없는 MD-11, MD-80, MD-90은 모조리 단종시키고 개발이 거의 끝나가 첫 비행을 앞두고 있었던 MD-95를 폐기하기 아까웠던 보잉은 보잉 717이라는 이름으로 MD-95를 리브랜딩 하면서 롱비치 공장에서 보잉 717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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