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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데 한 번 읽어볼까!?/잡학

키예프 러시아 PART 1(올레그, 스파토슬라프)

by 호기심심풀이 202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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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러시아

루릭과 같이 남쪽으로 내려온 노르만인 올레그가 점령한 키예프는 드네프르 강을 끼고 있어서 러시아의 여러 도시들 중에서도 전력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특히 키예프 바로 남쪽에 있는 비티체프 시는 크고 작은 상선대가 위험한 대초원 지대를 거쳐서 흑해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장소였다. 좋은 조건을 갖춘 키예프를 점령하고 있는 올레그는 스스로를 대공이라 칭했다. 우리야크인으로부터 그리스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해상로를 장악한 것이어서 상업뿐만 아니라 군사, 정치적으로도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초반 키예프 공국은 그다지 강력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올레그가 군사력을 서서히 강화시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브고로드, 스몰렌스크, 수즈달리 등 주변국으로부터 값비싼 모피와 노예 등 여러 상품들을 강제로 빼앗았다. 이러한 결과로 러시아인들의 생활은 공물 징집과 수상 운송이 중심이 되었다. 10세기 초, 올레그는 비잔티움과 통상을 넘어 군사 원정을 시도할만큼 강력해졌다. 

 

키예프 러시아는 9세기 말부터 11세기 중엽에 걸쳐 여섯 차례나 비잔티움을 공격했고 통상조약을 체결하여 관세를 면제받았고 그밖의 많은 특권을 부여받았다. 1050년경에 올레그는 사망하였는데,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민화로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시대에 한 마법사가 올레그에게 '마구간에서 가장 아끼는 말에 의해 죽게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 이후 올레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말에 접근하지 않았고 병사들에게 그 말을 잘 보살피라고도 했다. 그렇게 얼마 후 말이 죽고나서 올레그는 말의 뼈와 두개골을 보며 웃으며, 말의 두개골을 짓밟았는데 두개골 밑에 있던 독사가 그의 발을 물었고 그로인해서 올레그는 사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파토슬라프

올레그가 죽은 후 이골 공이 우두머리에 오르게 되었고, 영토 확장을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원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실패로 끝났고 키예프는 점점 쇠퇴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인 올가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인 스파토슬라프는 할아버지인 올레그를 닮아 대단히 진취적이었다. 10세기 말에 대원정에서 키예프의 영역을 엄청나게 확대시켜 놓았고, 북동쪽으로 불가르인을 침공하여 수도를 점령, 동쪽으로는 하자르 왕국을 격파했다. 남쪽으로는 비잔티움을 위협했지만, 그가 건설한 제국은 크게 성숙되어 있지는 않았다.


스파토슬라프는 전쟁에는 능했으나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은 부족했다. 하자르인의 세력을 제압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당시 유목민 페체네그인에게 길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비교적 온순하고 온화한 이웃 대신 매우 난폭하고 사나운 종족을 불러들인 그는 972년에 페체네그인에게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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