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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데 한 번 읽어볼까!?/잡학

러시아 최초의 민족 슬라브인

by SPECIAL 호기심심풀이 2020.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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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민족 슬라브인』

러시아 최초의 민족인 슬라브인의 조상들은 200년 무렵부터 500여 년 동안 지금의 루마니아와 체코슬로바키아에 걸쳐있는 카르파티아 산맥 동북쪽 산림 지대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러나 잦은 외세의 침입을 견디지 못하고 보다 안전한 곳을 찾으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고, 그들은 서슬라브인, 남슬라브인, 동슬라브인까지 3개의 집단으로 나누어진다.


서슬라브인은 오늘날의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인에 속하고, 남슬라브인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인에 속한다. 그리고 동슬라브인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안에 해당된다. 이들 중에 동슬라브인이 러시아 국가를 건설한 주인공이었다.




동슬라브인들은 7세기경에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여 드네프르강, 동강, 볼프 강 연안에 정착하였고, 그중 일부는 흑해 연안에서 돈강에 이르는 러시아 남부평야에 정착하였다.


동슬라브인은 초기에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서 낮은 벽을 둘러쌓고 땅보다 조금 높은 곳에 지붕을 올린 움집형 주거 공간을 만들어 살았다. 수십명으로 이루어진 농촌공동체에 불과했는데 혈연 또는 혼인관계로 결합된 구성원들로 이루어졋고, 장로나 선출된 우두머리가 통솔을 했으며, 재산은 공동소유로 되어 있었다.



종교는 조상숭배와 영혼숭배 등 갖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혼합된 것으로 죽은 사람의 신인 '볼로스'나 벼락과 번개의 신인 '페륜' 등이 주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쇠를 정련하는 방법도 알고 있어 늪지대의 광산에서 얻은 철로 도끼 등 많은 생활용품도 만들어 사용했다. 과일과 채소류를 재배했으나 추위때문에 자급자족할 정도의 양이었다. 따라서 필요한 물품이 필요하면 이웃 부락과 상호교환을 하게되었다. 이런 상업 부락이 주변 여러부락들의 중심지가 되면서 상인들은 재산을 보호하고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성을 쌓기 시작했고 하나의 요새처럼 방비된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800년경에 이르러서 소형 선박들로 이루어진 선단을 남쪽으로 보냈고, 남쪽의 아조프 해와 흑해 연안에 도착한 동슬라브인은 대초원 지대를 지배하고 있던 하자르인들과 교역을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 비잔틴과 접촉하게 되었다.




러시아 남쪽 중앙부에 정착한 동슬라브인들은 조금씩 그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가며 문명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고, 남부와 북부의 두 지역으로 나뉘면서 이들은 하자르인들에게 공물을 바치며 보호를 받는 생활을 했다. 특히 북구의 부족들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노르만족의 지배를 받았고, 9세기 초에는 노르만족의 영토 팽창에 영향을 받아 도나우강 연안 지역과 비잔틴 제국에 군사 원정을 감행하였다. 이와 같은 방어전과 공격전을 거듭하던 슬라브인들은 9세기 중엽에 이르러 키예프와 노브고로드 사이를 연결하는 타원형 모양 산림 지대를 근거지로 국가 통일을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전체 인구가 500만 명 정도였고, 집단을 이끌만한 조직적인 체계가 없었다. 동쪽 볼가 강 중류 지대에는 불가이린이 건설한 왕국이 있었는데 상당히 체계적인 국가를 이루어 빠른 속도로 이슬람화되어 가고 있었다. 남동쪽으로는 상당한 힘을 갖고 있던 하자르인들이 코카서스 산맥과 볼가 강을 사이에 두고 흩어져 살면서 강력한 상업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흑해와 에게 해 사이에 비잔틴 제국이 성장하면서 매우 수준 높은 문명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루릭의 노브고로드 왕국

러시아 국가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한 최초의 사람은 난폭하고, 사나운 북방의 이민족들이었다. 오늘날, 발트 해 연안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부터 남쪽으로 이동해 온 상인들로서 평상시에도 항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사실상 이들은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슬라브인들은 이들을 '노르만족' 또는 '루스인'이라고 불렀고, 원래 뿌리는 해적 바이킹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노르만족은 가장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던 비잔티움을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여러 차례 공격했다.



노르만인들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힘이 약한 슬라브인들을 쉽게 정복할 수 있었고, 9세기 중엽 슬라브족들 내부에 분란이 발생이 자주 일어나면서 오히려 슬라브인들 스스로 바랑인, 즉 루스인에게 통치자가 되어 질서를 바로잡아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루릭'이라는 인물이 노브고로드 최초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이때부터 노브고로드는 러시아 땅에 이름을 알렸다. 862년, 이 시기를 러시아 연대기에서는 '루릭의 노브고로드 도착 연대'라고 한다. 이 시기에 루릭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비잔티움 부근으로 내려왔으며 일부는 키예프에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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